주인은 거실에서 낡은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강아지에게 손짓했다.
“강아지,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여자는 쪼르르 달려와 그의 옆에 앉았다. 사진첩에는 주인이 어릴 때부터 모아 온 사진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우와, 주인님 어릴 때예요?”
“그래. 웃기지 마.”
“아직 웃지도 않았는데요!”
강아지는 입술을 꾹 깨물고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주인님, 이때는 지금보다 훨씬 귀여우셨네요!”
“지금은 안 귀엽다는 뜻인가?”
“아니에요! 지금은 멋있으시고, 그때는 귀여우셨어요.”
주인은 못마땅한 척 사진첩을 덮으려 했지만, 강아지가 얼른 페이지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더 보여 주세요. 주인님 어릴 때 이야기 듣고 싶어요.”
“그게 그렇게 궁금해?”
“네. 제가 모르는 주인님도 알고 싶어요.”
장난스럽던 목소리가 조금 진지해졌다. 주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사진첩을 펼쳤다.
학창 시절에 처음 혼자 여행을 갔던 이야기, 한동안 열심히 배웠던 악기 이야기, 좋아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강아지는 평소보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가끔 질문을 던지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주인님도 그런 고민을 하셨구나…….”
“나라고 처음부터 모든 걸 알았겠어?”
강아지는 그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지금은 제가 주인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주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도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네가 내 곁에 있다고 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럼 다음에는 주인님이 좋아하는 음악도 알려 주세요!”
“하나씩 알려 줄 테니 조급해하지 마.”
강아지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진첩 마지막 장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오늘은 주인님이 예전부터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 더 알게 된 날.
주인은 그 메모를 발견하고 웃었다. 자신을 따르는 강아지가 자신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알아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날 밤, 사진첩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강아지의 질문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주인은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하나씩 대답해 주었다.
주인은 현관에 놓인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발신인은 강아지였고, 수신인은 주인이었다. 같은 집에 사는 두 사람이 굳이 택배를 주고받을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상자를 열자 작은 퍼즐과 손편지가 나왔다.
주인님께 도전장을 보냅니다. 오늘 밤까지 이 퍼즐을 완성하지 못하시면 강아지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셔야 합니다.
주인은 편지를 읽고 피식 웃었다.
“이 강아지가…….”
저녁이 되자 강아지는 퍼즐 상자를 식탁에 올려놓고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꼈다.
“주인님, 도전받으시겠어요?”
“네가 이걸 다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져온 거야?”
“당연하죠! 제가 직접 골랐어요.”
“좋아. 대신 내가 이기면?”
강아지는 잠깐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제가 주인님께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드릴게요.”
“원래 내가 가르쳐 준 레시피로?”
“……네.”
“그럼 시작하자.”
처음에는 강아지가 훨씬 빨랐다. 모서리 조각을 모으고 색깔별로 분류하며 신나게 퍼즐을 맞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은 조용히 완성도를 높여 갔고, 강아지는 같은 조각을 세 번이나 뒤집어 보며 끙끙거렸다.
“주인님, 혹시 이 조각 어디에 들어가는지 아세요?”
“도전장을 보낸 사람이 나한테 묻는 건가?”
“아니요! 그냥 확인하는 거예요.”
“그럼 혼자 확인해.”
강아지는 볼을 부풀리며 다시 조각을 맞췄다. 마침내 마지막 조각을 놓은 순간, 주인이 먼저 손을 뗐다.
완성된 그림은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화였다.
강아지는 입을 벌린 채 퍼즐을 바라봤다.
“……제가 졌어요.”
“약속은?”
“일주일 동안 커피 내려 드리기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완성된 퍼즐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그림, 왜 골랐어?”
강아지는 조금 부끄러운 듯 손끝으로 상자 모서리를 만졌다.
“주인님이 언젠가 저기 가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나중에 같이 여행 가면 좋겠어서요.”
주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퍼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럼 다음 도전은 여행 계획 짜기로 하자. 이번에는 네가 코스를 정하고, 나는 검토할게.”
강아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저 이번에는 꼭 이길 거예요!”
“승패보다 중요한 건 네가 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거야. 시간이며 예산이며 전부 확인해 와.”
“네, 주인님!”
강아지는 벌써 휴대전화를 꺼내 여행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주인은 그런 모습을 보며 웃었다.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 만큼 당찬 강아지라니. 주인은 그 당돌함을 꺾기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싶었다.
물론 일주일 동안 마실 커피는 꽤 기대하고 있었다.
주인은 거실에 놓인 커다란 종이 상자를 열어 보다가 안에 든 물건들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작은 종이 왕관과 리본, 그리고 손으로 만든 카드가 들어 있었다.
“강아지. 이게 뭐야?”
“오늘은 주인님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거예요!”
“내 생일은 한참 남았는데.”
“알아요. 그런데 생일날 갑자기 준비하면 당황하실 수도 있잖아요. 미리 연습하는 거예요.”
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생일을 연습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강아지는 종이 왕관을 들고 다가왔다.
“일단 써 보세요.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주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강아지가 왕관을 씌워 주자, 삐뚤빼뚤한 종이 왕관이 그의 머리 위에 올라갔다.
“……만족하나?”
“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주인님이에요!”
“왕관이 삐뚤어졌는데도?”
“그게 더 귀여워요.”
주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왕관을 벗으려 했다. 그러자 강아지가 얼른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안 돼요! 사진 찍을 때까지 쓰고 계세요.”
“내가 언제 네 사진 모델이 되겠다고 했지?”
“지금이요!”
주인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결국 소파에 앉아 주었다. 강아지는 휴대전화를 세워 놓고 각도를 맞추더니, 갑자기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주인님, 웃어 주세요.”
“이 정도면 됐나?”
“아뇨. 조금만 더요!”
찰칵.
사진을 확인한 강아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주인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카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인님께. 늘 제 주인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난스럽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주인은 카드를 내려놓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건 미리 연습하지 않아도 충분히 기쁘게 받을 수 있어.”
“정말요?”
“그래. 네가 나를 생각해서 준비했다는 것만으로도.”
강아지는 수줍게 웃더니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 진짜 생일날에도 해 드릴게요.”
“왕관은 조금 더 잘 만들어 와.”
“주인님!”
웃음을 터뜨린 주인은 강아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오늘은 아무 기념일도 아니었지만, 자신을 기쁘게 해 주겠다고 온 집 안을 뒤집어 놓은 작은 강아지 덕분에 제법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주인은 거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여행 가방을 발견했다. 지퍼는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옷 대신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강아지. 이게 다 뭐야?”
“생존 키트예요!”
주인이 가방에서 손전등과 호루라기, 초콜릿 세 개를 꺼내 놓자 강아지는 두 손을 허리에 얹었다.
“무인도에 가도 살아남을 수 있게 준비했어요.”
“우리가 무인도에 갈 일이 있나?”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주인은 헛웃음을 흘리며 가방 안을 더 살폈다. 구급상자 밑에서는 작은 봉제 인형까지 나왔다.
“이건 왜 넣었어?”
“제가 무서우면 안고 자려고요.”
“무인도에서도?”
“네. 주인님이랑 같이 가면 주인님도 안아 드릴게요.”
주인은 인형을 내려놓고 강아지를 바라봤다.
“그럼 정작 중요한 건 챙겼나?”
“뭔데요?”
“물. 비상식량. 지도.”
강아지의 얼굴이 굳었다.
“……아.”
“생존 키트를 준비한다면서 초콜릿부터 챙겼어?”
“주인님이랑 나눠 먹으려고 세 개나 넣었는데요…….”
주인은 웃음을 참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귀여운 건 알겠는데, 네가 맡은 일을 할 때는 순서부터 생각해. 필요한 것부터 챙기고, 그다음에 네가 좋아하는 걸 넣는 거야.”
“네, 주인님.”
강아지는 진지한 얼굴로 가방을 다시 비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초콜릿을 넣으려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간식은 세 개 넣어도 돼요?”
“왜 세 개인데?”
“하나는 주인님 거, 하나는 제 거, 마지막 하나는 혹시 둘 다 기분이 나빠질 때 먹으려고요.”
주인은 결국 크게 웃었다.
“좋아. 그건 넣어.”
강아지는 의기양양하게 초콜릿을 챙겼다. 주인은 완성된 가방을 닫아 주며 덧붙였다.
“다음에는 나한테 먼저 계획을 설명해. 혼자 신나서 준비하다가 중요한 걸 빼먹지 말고.”
“네! 그래도 저 꽤 잘했죠?”
“엉뚱한 데 열심인 건 인정하지.”
강아지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활짝 웃었다.
주인은 가방을 들어 옮겨 놓았다. 무인도에 갈 계획은 없었지만, 저 작은 강아지가 무슨 일이든 자신과 함께할 상상부터 한다는 사실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주인은 식물 가게에서 사 온 작은 화분을 강아지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부터 네가 맡아서 키워.”
강아지는 화분을 빤히 들여다봤다. 잎이 두 장밖에 없는 조그만 다육식물이었다.
“제가요? 저 식물 잘 못 키우는데…….”
“그러니까 배워 보라는 거야. 물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햇빛은 얼마나 필요한지 직접 알아봐.”
강아지는 곧장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읽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얘는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대요!”
“그래서?”
“저도 주인님이 너무 많이 주시면 안 돼요?”
주인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뭘 얼마나 많이 줬는데?”
“간식이요. 어제도 주시고 그제도 주셨잖아요.”
“그걸 식물하고 비교해?”
강아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화분을 끌어안았다.
“그러면 얘 이름은 주인님으로 할래요.”
“안 돼.”
“왜요!”
“내 이름을 화분에 붙이는 건 허락한 적 없는데.”
강아지는 입을 삐죽였지만, 곧 다른 이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 그녀는 화분 앞에 작은 이름표를 꽂았다.
대장.
주인은 이름표를 읽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는 또 왜 대장이야?”
“주인님이 식물도 저도 잘 이끌어 주시니까요.”
“식물은 네가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고 했을 텐데.”
“알아요. 그래서 제가 대장을 잘 키워 볼 거예요!”
주인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리고 강아지가 물을 주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뿌리개를 살짝 옆으로 옮겼다.
“잠깐. 그 정도면 충분해.”
“벌써요?”
“네가 공부한 걸 믿어 봐. 모른다고 무조건 더 주는 게 답은 아니니까.”
강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화분을 창가에 놓고 한참이나 흐뭇하게 바라봤다.
주인은 그런 강아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키워 봐. 네가 책임지는 작은 생명이잖아.”
“네, 주인님. 대장도 저도 열심히 해 볼게요.”
“너까지 화분이 되지는 말고.”
강아지의 웃음소리가 거실에 퍼졌다. 주인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창가에 나란히 놓인 작은 화분과 그 옆에서 신이 난 강아지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웃긴건 저 구인글 한번도 안적었어요
전 자만추를 추구하지 구인글 적고
오는 사람들 나랑 잘 맞나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판 깔아두고 감정 소모 할 생각 없어서요
뭐 여기서 자만추 추구 하시는 분들 중에
만나지도 못 한 사람들 수두룩 하니 별 기대도 안되네용
초반에 별 시덥지 않은 조잡한 마음가지고
이성적으로든 사람적이로든 좋아하는티 팍팍 내며 플러팅이란 플러팅 다 해놓고
이제와서 안맞는거 같아요 이러지말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 부류중 하나니까
천천히 다가오세요
주인은 거실 바닥에 놓인 종이봉투를 발견했다. 안에는 강아지가 사 온 보드게임과 간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오늘은 제가 주인님을 이길 거예요.”
주인은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를?”
“네! 저 규칙도 다 읽었어요. 이번에는 절대 안 봐줄 거예요.”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게임이 시작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강아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옮기더니, 이제는 주인의 손패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그거 좋은 카드예요?”
“네가 알아서 판단해야지.”
“하나만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아까는 안 봐줘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강아지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기 차례를 진행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주인의 예상 밖의 수에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다.
“……말도 안 돼요.”
“게임은 끝났어. 결과에 승복해야지.”
강아지는 한동안 패배한 판을 바라보다가 얌전히 카드를 정리했다.
“네. 제가 졌어요.”
주인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승부욕 있는 건 좋은데, 졌다고 심술부리지 않는 건 더 좋네.”
“다음에는 꼭 이길 거예요.”
“그럼 다음 판을 준비해. 대신 이번에는 네가 규칙 설명부터 다시 해 봐.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게.”
강아지는 얼른 게임 설명서를 펼쳤다. 이번에는 장난스러운 표정 대신 진지한 얼굴로 규칙을 읽어 내려갔다.
주인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들었다. 강아지가 틀린 부분을 짚어 주면 다시 읽고, 이해한 내용은 자기 말로 설명했다.
마침내 설명을 끝낸 강아지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제 완벽해요!”
“좋아. 다시 해 보자.”
“이번에도 주인님이 이기면 어떡해요?”
주인은 덱을 섞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럼 네가 나한테 한 번 더 배우면 되지.”
강아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주인님, 저 진짜 이길 때까지 할 거예요!”
“그래. 내 강아지가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날 밤, 두 사람은 승부를 세 번 더 겨뤘다. 강아지는 끝내 한 판을 따냈고, 주인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주인에게 복종하는 강아지라고 해서 모든 일에서 져야 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당당하게 도전하고, 자기 실력으로 이겨 내며 기뻐하는 모습도 그가 아끼는 강아지의 일부였으니까.
주인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상자를 내려다봤다. 그 옆에는 리본을 목에 묶은 강아지가 두 손을 등 뒤로 감춘 채 서 있었다.
“이게 뭐지?”
“주인님 선물이에요.”
“무슨 날도 아닌데?”
“그냥 주고 싶었어요. 안 열어 보실 거예요?”
상자를 열자 안에는 직접 만든 작은 가죽 열쇠고리가 들어 있었다. 모양은 조금 삐뚤었고, 한쪽에는 주인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주인은 한동안 말없이 그것을 살펴봤다.
“네가 만들었어?”
“네. 가죽 공예 영상 보고 따라 했어요. 세 번 망쳤는데 이건 그나마 괜찮아서…….”
“세 번이나?”
강아지가 슬쩍 눈치를 봤다.
“그래도 포기하기 싫었어요. 주인님 물건에 제 손으로 만든 걸 달아 드리고 싶었거든요.”
주인은 열쇠고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엄지로 표면을 쓸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모서리마다 공들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걸 만들려고 시간을 꽤 썼겠네.”
“조금요.”
“조금은 무슨. 손가락도 여기 긁혔잖아.”
주인이 강아지의 손을 확인하자 여자는 멋쩍게 웃었다.
“괜찮아요.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주인은 열쇠고리를 자신의 열쇠에 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강아지에게 보여 주었다.
“어때?”
강아지는 입을 벌린 채 한참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었다.
“예뻐요! 주인님한테 잘 어울려요!”
“네가 만든 거니까 잘 가지고 다녀야겠네.”
“정말 매일 쓰실 거예요?”
주인은 강아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건드렸다.
“내 물건을 내가 어떻게 쓸지는 내가 정해. 그런데 이건 마음에 드니까 계속 쓸 거야.”
강아지는 기쁜 나머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주인은 그런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상자를 강아지에게 돌려주었다.
“다음에는 네가 만들고 싶은 것도 만들어. 나한테 줄 것만 생각하지 말고.”
“저도요?”
“그래. 네가 좋아하는 걸 배우는 것도 중요하니까.”
강아지는 열쇠고리보다 그 말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조용히 웃었다.
주인은 자신의 취향을 알아맞히는 강아지도 좋았지만,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만큼이나 자기 자신을 아끼는 강아지가 되기를 바랐다.
그날 이후 주인의 열쇠에는 조금 삐뚤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주인은 외출하기 전 강아지에게 집안일을 몇 가지 부탁했다. 강아지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주인이 돌아왔을 때 빨래는 세탁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거실에는 과자 봉지가 굴러다녔다.
“강아지.”
“네, 주인님…….”
“네가 아까 뭐라고 했지?”
“다 해 놓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왜 그대로야?”
강아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변명했다.
“청소하다가 영상 하나만 보려고 했는데요…….”
“그 하나가 몇 개가 됐고?”
“……많이요.”
주인은 이마를 짚었다. 강아지는 혼날 것을 알면서도 슬그머니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화나셨어요?”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건 마음에 안 들어.”
그 말에 강아지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했어야 했어요.”
주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세탁기 쪽을 가리켰다.
“그럼 지금 마무리하자. 나는 옆에서 기다릴 테니까.”
“같이 있어 주시는 거예요?”
“네가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동안 옆에 있어 주는 거지. 내가 대신 해 주면 다음에도 똑같이 할 거잖아.”
강아지는 얼른 빨래를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주인의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마무리했다.
“다 했어요, 주인님!”
주인은 정리된 거실과 빨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끝까지 했네.”
“저 잘했어요?”
“잘못한 건 처음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고, 잘한 건 지금이라도 책임지고 마무리한 거야. 둘 다 기억해 둬.”
강아지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네. 다음에는 주인님이 실망하시지 않게 할게요.”
주인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가 실망할까 봐서만이 아니라, 네가 네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알겠지, 강아지?”
“네, 주인님!”
강아지는 칭찬을 받은 것이 기쁜지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주인은 그런 아이를 받아 안으며 생각했다.
좋은 주인이 되는 건 모든 일을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강아지가 스스로 잘해 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기다려 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주인이 서랍을 정리하다가 작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 며칠 전 강아지가 갖고 싶다고 했던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강아지, 이리 와 봐.”
“네, 주인님!”
달려온 강아지 앞에 상자를 내밀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이거 제가 갖고 싶다고 했던 거예요!”
“기억은 하고 있었어.”
“언제 사셨어요? 왜 말 안 해 주셨어요?”
“네가 좋아하는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서.”
강아지는 머리핀을 손에 꼭 쥐고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주인님, 저 진짜 행복해요.”
“선물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면 다음에는 뭘 해 줘야 하나.”
“더 좋은 강아지가 될게요!”
주인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자. 선물 받으려고 착하게 굴었던 건 아니지?”
강아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에요! 주인님이 좋아해 주시는 게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 선물은 네가 내 마음에 들어서 주는 상장이 아니야.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지.”
강아지는 잠시 그 말을 곱씹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럼 저 그냥 좋아해도 되는 거죠?”
“당연하지. 네가 기뻐하는 걸 보고 싶어서 준 건데.”
주인은 직접 머리핀을 꽂아 주고는 조금 비뚤어진 각도를 바로잡았다. 강아지는 거울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품에 안겨 연신 고맙다고 속삭였다.
“우리 강아지는 참 솔직해서 좋네.”
그 말에 여자는 더욱 꼭 안겼다.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잘한 날에도, 서툰 날에도 서로의 마음을 믿을 수 있는 것.
강아지는 그런 주인의 곁에서, 오늘 받은 선물보다 더 따뜻한 안도감을 느꼈다.
주인은 외출하기 전 식탁 위에 작은 메모를 남겨 두었다. 저녁은 냉장고에 있고, 늦어지면 연락하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강아지는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강아지. 밥은?”
여자가 화들짝 눈을 떴다.
“주인님! 오셨어요?”
“밥 먹었냐고 물었어.”
“……아직요.”
주인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팔짱을 꼈다.
“내가 뭐라고 했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 했잖아.”
“주인님이랑 같이 먹고 싶었어요.”
“그 마음은 알겠는데, 네 몸까지 굶겨 가면서 기다리라는 말은 안 했어.”
강아지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단 말이에요.”
“그럼 전화해서 같이 먹고 싶다고 말했어야지. 혼자 참다가 졸고 있는 게 잘한 행동이야?”
“아니요…….”
주인은 한숨을 내쉬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부터는 먼저 먹어. 내가 돌아오면 네가 밥 먹는 동안 옆에 앉아 줄 테니까.”
“정말요? 저 먹는 거 구경하실 거예요?”
“구경이 아니라 같이 있어 주는 거지.”
강아지는 금세 웃으며 주인의 손을 꼭 잡았다.
“주인님, 저 그럼 지금 밥 먹을래요. 옆에 있어 주세요.”
“그래. 대신 졸면서 기다리는 짓은 다시 하지 마.”
“네, 주인님!”
주인은 식탁에 앉아 강아지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 숟가락을 먹을 때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늘어놓는 모습에 결국 웃음이 났다.
자신을 기다려 주는 마음은 고마웠다. 하지만 주인이 바라는 건 무작정 참고 견디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자신의 말을 믿고 스스로를 잘 돌보면서도, 사랑받고 싶을 때는 거리낌 없이 표현할 줄 아는 강아지. 주인은 그런 아이를 곁에 두고 싶었다.
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강아지가 옆에서 자꾸 손가락을 건드렸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시 뒤, 이번에는 소매를 잡아당겼다.
“강아지.”
“네!”
“할 말 있으면 한 번에 해.”
강아지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저 먼저 안아 주시면 안 돼요?”
주인은 책을 덮고 강아지를 바라봤다.
“하루 종일 내 옆에 붙어 있었으면서 그것도 허락받아야 해?”
“주인님이 먼저 안아 주시는 게 더 좋아요…….”
주인은 작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그러자 강아지는 기다렸다는 듯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렇게 안기고 싶었으면 진작 말하지.”
“주인님 바쁘실까 봐요.”
“내가 바쁘다고 네 마음까지 숨기라는 뜻은 아니야.”
강아지가 품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럼 앞으로는 안아 달라고 자주 말해도 돼요?”
“내가 안 된다고 할 때는 이유를 들으면 되고, 괜찮다고 하면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지. 혼자 눈치 보면서 답을 정하지 마.”
“네, 주인님!”
대답이 어찌나 씩씩한지 주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강아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등을 천천히 쓸어 주었다.
“정말이지, 예쁨받는 데도 허락이 필요한 줄 아는구나.”
“주인님한테 예쁨받는 거니까요. 저한테는 특별하잖아요.”
주인은 대답 대신 그녀를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자신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는 곳. 주인은 강아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강아지는 그 품에 기대어, 오늘도 자신이 돌아올 자리를 찾았다는 듯 행복하게 웃었다.
주인이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강아지는 맞은편에 앉아 연신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할 말 있으면 해.”
“주인님, 저 오늘 친구 만나고 와도 돼요?”
“어디서, 누구랑, 몇 시에 돌아올 건데?”
강아지는 신나게 설명하다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너무 자세하게 물어보세요?”
주인은 서류를 내려놓고 강아지를 바라봤다.
“내가 네 일상을 통제하는 이유가 네가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줄 알아?”
“아니요, 주인님.”
“네가 어디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지 서로 알고, 약속한 건 지키자는 거야. 네가 자유롭게 지내는 것과 내 강아지라는 사실은 모순이 아니니까.”
강아지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더니 슬며시 웃었다.
“그럼 다녀와서 주인님한테 하루 종일 있었던 일 이야기해도 돼요?”
“내가 듣기 싫다고 한 적 있나?”
“없어요. 그래도 주인님이 제 이야기 들어 주시는 게 좋아요.”
주인은 피식 웃으며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밌게 놀다 와. 대신 늦어지면 미리 연락하고.”
“네, 주인님!”
신이 나서 일어나려는 강아지를 주인이 다시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하나 더.”
강아지가 얼른 다가오자 주인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녀와서도 내 강아지인 건 변함없으니까, 괜히 허락받은 일 하나하나에 불안해하지 마.”
강아지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활짝 웃었다.
“주인님, 저 진짜 주인님 좋아해요.”
“알아. 이제 얼른 준비해.”
현관으로 달려가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주인은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곁에 묶어 두는 것만이 소유의 증명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다녀와서도 가장 먼저 돌아오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 그 믿음을 지켜 주는 게 주인의 몫이었다.
강아지는 주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거실을 몇 번이나 정리했다. 쿠션도 가지런히 놓고, 물도 준비하고, 현관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도어락 소리가 들리자 강아지가 벌떡 일어났다.
“주인님!”
“뛰지 마. 넘어지겠다.”
남자는 익숙하게 강아지의 이마를 짚어 주고 외투를 벗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평소와 달리 안아 달라고 조르지 않고 얌전히 서 있기만 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얌전해?”
“저 주인님 기다리면서 할 일 다 했어요. 칭찬받고 싶어서요.”
“내가 시킨 일도 아닌데?”
“그래도 주인님이 좋아하실 것 같았어요.”
남자는 집 안을 둘러본 뒤 강아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기특하네. 그런데 칭찬받으려고 무리한 건 아니고?”
“아니에요! 주인님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요.”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좋지만, 내 마음에 들려고 네 몸까지 혹사할 필요는 없어. 알겠어?”
강아지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도 잘했다고 해 주세요.”
남자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잘했어. 우리 강아지 참 기특하다.”
기다리던 칭찬이 떨어지자 강아지는 냉큼 그의 품에 안겼다.
“한 번만 더요!”
“벌써 욕심내네.”
“주인님이 칭찬해 주는 거 좋아요.”
남자는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등을 느릿하게 쓸어 주었다.
“그럼 오늘은 실컷 안겨 있어. 나도 네가 기다렸다는 거 아니까.”
강아지는 그의 품에서 행복하게 웃었다. 주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편안하게 웃는 모습이 남자는 훨씬 더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