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와카야마현 기노카와시(紀の川市)에 있는 기시역(貴志駅).
시골 노선 끝자락에 붙은 작은 역임.
이 노선은 오랫동안 적자에 시달렸음.
한때는 아예 없어질 뻔했음.
새 회사가 노선을 넘겨받으며 겨우 살아남았음.
새 회사는 돈을 아껴야 했음.
결국 기시역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 됐음.
역 바로 옆에는 작은 매점이 하나 있었음.
그 매점에서 삼색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음.
이름은 다마(たま).
그런데 역이 정리되면서 문제가 생겼음.
다마가 살던 자리까지 없어질 처지가 됐음.
오가는 손님들이 쓰다듬던 고양이가 갈 곳을 잃게 된 것임.
회사는 이 고양이를 그냥 내보내지 않았음.
대신 아주 엉뚱한 방법으로 다마를 지키기로 했음.
일본에는 손을 들어 손님을 부르는 고양이 인형이 있음.
마네키네코(招き猫)라고 부름.
가게마다 복을 부르라고 하나씩 놓아둠.
회사는 다마에게 정식으로 임명장을 주기로 했음.
사람 하나 없는 역에서 고양이가 맡게 된 자리는
この猫に任された仕事、何だと思いますか?
역장이었음.
일본어로 에키초(駅長).
무인역의 역장 자리에 고양이를 앉힌 것임.
2007년 1월의 일이었음.
맡은 업무는 딱 하나. 손님 부르기였음.
다마는 그 일을 아주 잘해냈음.
고양이 역장 소식은 금세 전국으로 퍼졌음.
나중에는 바다 건너 외국에까지 알려졌음.
고양이 한 마리 보려고 사람들이 시골 역까지 찾아왔음.
다마는 해마다 승진했음.
와카야마현 지사에게서 기사 칭호까지 받았음.
와카야마를 전국에 알린 공을 인정받은 것임.
회사에선 임원 직함까지 달았음.
나중에는 부하도 생겼음.
다마를 꼭 닮은 삼색 고양이였음.
두 번째로 찾은 다마라서 이름이 니타마(ニタマ)가 됐음.
기시역 역사도 새로 지어졌음.
이 노선이 50년, 100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함.
쫓겨날 뻔한 고양이 한 마리가 사라질 뻔한 노선을 붙잡은 셈임.
이 정도면 이 남자 시작부터 진심이었다
티파니 결혼반지도 짝퉁 90% 판정ㅋㅋㅋㅋ
정가은이 유튜브에서 10년 만에 결혼반지 처분하러 종로갔는데 감정사가 정품이랑 각인 글씨체부터 아예 다르다고 가품 확률 90퍼 넘는다고 함ㅋㅋㅋ.
전남편한테 양육비도 제대로 못 받고 명의 도용당해서 130억대 사기친 넘인데, 아니 이 정도면 처음부터 진심이었누
ㅋㅋㅋㅋㅋ
달걀 삶고 노른자 테두리에 이 녹색 정체가 뭐임?
조리 시간이 조금 길었다는 단순한 흔적. 과학적으로 달걀을 삶을 때 열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데 이게 왜 자연스러운건지 이과 대답좀...ㅋㅋㅋ
사실 나도 이과인데 모름ㅋㅋ
한 달에 167억씩 복사기 돌리는 전직 공직자 클라스 ㄷㄷ
일반 직장인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금액을 불과 7개월 만에 1,170억 넘게 불려버린 레전드.
주인공은 행안부 이북5도위원회 이세웅 전 평안북도지사인데 이번 퇴직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무려 2,759억 원을 신고하면서 압도적 1위를 찍음. 근데 진짜 소름 돋는 건 지난 3월 정기 신고액과 비교했을 때 단 7개월 만에 73.9%, 금액으로는 1,172억 원이 불어났다는 거임. 한 달 평균으로 치면 매달 167억 원씩 자산이 알아서 증식한 셈
비결은 바로 삼성전자 '84만 주'의 위력이라고 함.
지금은 좀 떨어졌겠지만, 그래도 기업가 출신 정치인도 아닌데 재산 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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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노현 고모로(小諸)를 흐르는 지쿠마강(千曲川).
옛날 이 강가에 한 할머니가 살았음.
절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사람이었음.
부처님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렸음.
일본어로 믿는 마음을 신진(信心)이라고 함.
이 할머니는 신진이 없기로 동네에서 유명했음.
절 앞을 지나도 손 한 번 모으지 않았음.
어느 날 할머니는 강가에서 누노(布, 천)를 널어 말리고 있었음.
햇볕에 하얗게 바래던 귀한 천이었음.
그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났음.
주인도 없는 처음 보는 소였음.
소는 할머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음.
그리고 뿔에 천을 척 걸었음.
그대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음.
할머니는 기가 막혔음.
내 천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음.
들을 넘고 산을 넘었음.
숨이 턱까지 차도 멈추지 않았음.
천이 아까워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음.
정신을 차려 보니 처음 보는 큰 절 마당이었음.
사람들이 줄지어 손을 모으고 있었음.
소는 커다란 법당 앞에서 걸음을 멈췄음.
할머니가 겨우 손을 뻗어 천을 잡으려는 순간
この牛の正体、わかりますか?
소가 눈앞에서 사라졌음.
법당 근처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고 전해짐.
할머니가 서 있던 곳은 나가노의 젠코지(善光寺)였음.
고모로에서 한참 떨어진 큰 절임.
할머니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섰음.
천 한 장 쫓아 여기까지 온 자기가 어이없었음.
그 뒤로 할머니는 부처님을 믿게 됐다고 함.
그 지역에선 그 소가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고 전해짐.
믿음 없는 할머니를 절까지 데려가려고 소로 변했다는 얘기임.
고모로의 절벽 위 절 샤쿠손지(釈尊寺)가 이 관음을 모심.
그래서 이 절은 누노비키 관음(布引観音)이라고 불림.
천을 끌고 간 관음이라는 뜻임.
절로 오르는 산길에는 소 모양이 비치는 바위가 있음.
절벽의 하얀 부분은 그때 그 천이라는 얘기도 내려옴.
이 일에서 일본 속담이 하나 생겼음.
牛に引かれて善光寺参り.
소에 끌려 젠코지 참배라는 말임.
남에게 이끌려 우연히 좋은 길로 들어선다는 뜻으로 씀.
천 한 장 아까워 달린 걸음이 할머니 인생을 바꿔 놓은 셈임.
jinzza_im retweeted
이제 겨울이라 크록스 많이 신고 다니지 않지만 크록스 신고 에스컬레이터 탈때 진짜 조심하세요..
특히 아이들에게 필히 조심하라고 당부 부탁드려요!!
진짜 위험하거든요!😱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西宮)에 있는 고시엔(甲子園) 구장. 여름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진 팀 선수들은 바로 안 들어가고 그라운드에 쭈그려 앉음. 그리고 손으로 흙을 퍼서 주머니나 봉지에 담음. 甲子園の土, 고시엔 흙임.
처음 시작한 사람은 확실하지 않음. 1930년대 구마모토공고 투수였던 가와카미 데쓰하루가 유니폼 주머니에 넣어 갔다는 설이 있음.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949년 고쿠라고 투수 후쿠시마 가즈오. 여름 대회 3연패에 도전했다가 지고, 발밑 흙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고 함. 이 사람은 나중에 '고시엔 흙 원조'로 야구 전당에까지 들어감.
담는 데도 눈치가 있음. 3학년은 마지막 대회라 마음껏 담는데, 1·2학년은 담기가 애매함. 선배들한테 "내년엔 안 올 거냐"는 압박을 받는다는 게 출신 선수들 얘기. 3학년도 여유가 없는 게, 대회 관계자가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해서 생각만큼 못 담는다고 함.
담아 간 흙은 집에 병에 담아 두거나, 주변에 나눠 주거나, 학교 운동장에 뿌림. 45년 전에 담은 흙이 지금도 보물이라는 프로 출신 선수도 있음.
웃긴 건 이 흙이 원래 고시엔 흙도 아니라는 거. 구장 자리가 원래 하얀 모래밭이라 그대로 쓰면 흰 공이 안 보였음. 그래서 처음부터 다른 지역 흙을 섞어서 깔았고, 지금은 오카야마, 미에, 가고시마, 돗토리 같은 데서 가져온 검은 흙을 섞음. 모래는 중국 푸젠성 것을 쓰던 때도 있었음. 봄엔 비가 많아서 모래를 많이, 여름엔 공이 잘 보이게 검은 흙을 많이 섞음.
근데 이 흙이 바다에 버려진 적이 있음. 1958년 여름
甲子園の土、今も家に飾ってる人いる?
1958년, 오키나와 슈리고(首里高)가 오키나와 학교로는 처음 고시엔에 나감. 당시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라 미국 통치 아래 있었음. 그해가 40회 기념대회라 모든 지역에서 한 팀씩 나갈 수 있게 되면서 처음 기회가 온 거.
1회전에서 짐. 선수들도 다른 팀처럼 흙을 봉지에 담아 배를 타고 돌아감.
근데 나하항(那覇港)에서 막힘. 미국 통치 아래 식물방역법에 걸려서 '외국 흙'은 들여올 수 없다는 이유. 선수들은 들고 온 흙을 바다에 버려야 했음.
이게 일본 전국에 보도되고, 이 소식을 들은 일본항공 승무원이 고시엔 구장의 작은 돌들을 주워서 학교에 보냄. 흙은 안 되지만 돌은 걸리지 않으니까. 고시엔 흙으로 구운 도자기 접시도 선수들한테 따로 전해짐.
팀 전체가 다 같이 흙을 담는 지금 같은 모습이 퍼진 데에 이 슈리고 일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음.
1973년 오키나와 오노야마 운동공원에 '土' 한 글자가 새겨진 '우정의 비'가 세워짐. 그 비석 아래에 승무원이 보낸 그 돌들이 묻혀 있음.
2008년, 50년 전 슈리고 주장이 고시엔 행사에 초대돼서 다시 그라운드에 섬. 미리 주머니에 봉지를 챙겨 가서, 50년 전 못 가져간 흙을 한 줌만 담아 왔다고 함.
2010년엔 오키나와 고난고(興南高)가 여름 대회 우승기를 들고 돌아감. 흙을 바다에 버렸던 곳으로 이번엔 우승기가 들어간 거임.
하루에 4시간 월 600만 참 쉽쥬?
근데 궁금한게 이건 청소비로 골프장에서 받는걸까? 로스트볼을 건져서 판매수익을 말하는걸까? 아니면 둘다일까?
요즘 로스트볼이 상태와 브랜드에 따라
1알에 평균 500-1000원 한다고 함.
폐급 연습용은 제외하고 라운딩 가능한 A급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