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creator.내 뒤틀린(?) 인생관을 글에 녹여서 말해요 설명충 +렉카 + 글공장( 한국어 / 日本語 / ENG ok ) 재밌게 노는 채널이 되고 싶어요. FUB FREE

Joined June 2015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그래서 많은 것을 준비했어. 달콤한 것도, 조금 쓴 것도. 익숙한 것도, 한 번쯤 궁금해할 만한 낯선 것들도. 그중 하나쯤은 네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부터 고민해. 어떤 말을 하면 웃을까. 어디에 가면 즐거워할까. 무엇을 보여주면 눈을 반짝일까. 그렇게 상대의 취향을 알아가면서, 가끔은 정작 그 사람조차 몰랐던 취향을 함께 발견하기도 해. 늘 단것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쌉싸름한 맛에 끌릴 수도 있고, 한 번도 관심 없던 무언가가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그러니 내가 준비한 것들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내가 잘못 준비했다는 뜻도, 네가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니까. 그저 아직 네가 좋아하는 것을 만나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어. 그럼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찾아보자. 이번에는 네가 무엇을 고르는지, 어떤 맛에 오래 머무는지 나도 궁금하거든. 물론 언젠가는 내가 준비하지 않은 것을 네가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는 조금 아쉽겠지만, 그래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준비한 것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것보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나는 많은 것을 준비했어. 그리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 또한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이 되겠지. 그 여행에서 네가 어떤 것을 발견할지, 나도 옆에서 함께 궁금해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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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천재라고 불렸지만, 기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 역사에는 시험에 떨어진 뒤 세상을 뒤흔든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인정받았음에도 우리가 기대했던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 1. 윌리엄 제임스 시디스 (1898~1944) 11세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미국의 천재 소년. 어린 나이에 고차원 기하학을 강의할 정도로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보였고,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받았어.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학계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평범한 사무직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지. 대중의 관심을 피하며 조용히 살기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물론 책을 집필하고 독자적인 연구도 했지만, 어린 시절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계적인 수학자로 성장하지는 않았어. 🇫🇷 2. 미누 드루에 (1947~) 1950년대 프랑스에서 천재 시인으로 불렸던 소녀. 여덟 살 무렵 발표한 시들이 큰 화제를 모았고, 프랑스 문학계에서는 어린아이가 정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까지 벌어졌어. 그만큼 당시의 관심은 엄청났지.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린 시절만큼의 문학적 명성을 이어가지 못했어. 이후에도 작품을 발표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자리 잡지는 않았지. 🇬🇧 3. 수피아 유소프 (1984~) 13세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한 천재 소녀. 어린 나이에 명문대에 입학하면서 영국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어. 하지만 대학 생활 도중 가족과 갈등을 겪었고, 결국 학업을 중단했지. 이후에는 수학 연구자의 길을 걷지 않았고, 어린 시절 사람들이 기대했던 학문적 업적도 남기지 않았어. 다만 이는 재능이 부족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인 환경과 삶의 선택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해.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훗날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이라고 기대했어. 하지만 실제 인생은 그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 물론 이들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야. 다만 어린 시절의 천재성이 반드시 역사적인 성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지. 우리는 뛰어난 재능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미래까지 기대하잖아? 그런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그 재능을 세상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에게도 평범하게 살아갈 자유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시험에 떨어진 뒤 역사를 뒤흔든 사람들. 🇰🇷 홍경래 1798년 과거 시험에 낙방. 이후 1811년 평안도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킴 🇨🇳 홍수전 과거 시험에 여러 차례 낙방. 결국 1851년 '태평천국'을 세우고 청나라에 맞서 대규모 전쟁을 벌임 🇩🇪 아돌프 히틀러 1907년과 1908년 빈 미술아카데미 입학시험에 실패. 이후 1933년 독일 총리가 되었고... 그 뒤는 모두가 아는 일이 펼쳐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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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입사원들이 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많이 참았던 걸까?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신입사원이 잘못했다고만 생각하기는 어려웠어. 여자친구와의 100일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예정된 야근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잖아. 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거야. 반대로 회사 역시 마감이 급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직원의 개인적인 시간을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예전부터 회사에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문화에 익숙했잖아. 연차를 쓰면서도 미안해하고,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먼저 일어나면 괜히 불편했던 경험들 말이야. 그런데 그런 문화에 익숙했다는 이유로 지금의 신입사원도 똑같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가 참아왔던 불합리함을 다음 사람에게도 물려줄 필요는 없잖아. 물론 신입사원 역시 자신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을 이해하고, 맡은 업무를 어떻게 책임질지 동료들과 충분히 조율해야겠지. 나는 오히려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서로 이야기하고,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설명하면 되는 거니까. 어쩌면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건 신입사원의 행동 자체보다, 과거의 나는 감히 하지 못했던 말을 저 사람은 너무 쉽게 하고 있다는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든 요구가 정당해지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시간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것부터 잘못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입사 석 달 된 신입이 회의 중에 손 들고 한 말 우리 팀에 신입 하나 들어온 지 이제 석 달 됨 오늘 주간 회의 하는데 신입이 갑자기 손을 들었음 다음 주 금요일 야근 잡혀 있던데 그날 여자친구랑 100일이라 못 남을 것 같다고 함 혹시 다른 분이 대신 남아주시면 안 되냐고 정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음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 다 말이 없었음 나도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음 팀장님이 이번엔 마감이 급해서 다 같이 남아야 하는 거라 조율이 어렵다고 했음 그러니까 신입이 그럼 자기만 빼고 진행하면 안 되냐고 함 자기 일은 주말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일찍 와서 끝내놓겠다고 그 말 듣고 다들 또 조용해졌음 회사가 학원도 아니고 내 몫을 남이 대신 해주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함 나 신입 때는 연차 하루 쓰는 것도 며칠을 눈치 봤음 결국 말 못 꺼내고 넘어간 날이 더 많았음 신입이 틀린 건지 내가 너무 참기만 했던 건지 아직 잘 모르겠음 다른 회사 신입들도 이런지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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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생 한두 번 겪는 황당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수도 있잖아? 생각해 보면 세탁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올 거야. 몇 년 전에 맡긴 옷을 찾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 테고, 분명 맡겼다고 우기는데 알고 보면 다른 세탁소에 맡긴 사람도 있겠지. 우리는 자기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리는데, 사장님은 수많은 손님의 옷을 관리하고 계시는 거잖아. 그런데 이런 일은 세탁소에만 있는 게 아니야. 미용실 원장님은 내가 마지막으로 머리를 자른 날을 기억하고,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은 내가 엔진오일을 언제 갈았는지 알고 계시기도 하지. 정작 내 인생인데, 내 생활의 일부를 나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대부분을 잊어버리잖아.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내가 잊어버린 그 순간이 업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거지. 어쩌면 동네 가게들은 우리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일상들을 보관하는 작은 기록관인 걸까? 그나저나 저 세탁소 사장님은 작년에 맡긴 코트도 기억하고, 어제 맡긴 코트도 기억하시네. 이 정도면 세탁소가 아니라 손님들의 옷장 외장하드 아닌가? 🤣🤣🤣
동네 세탁소에서 의외로 흔한 일 작년 봄에 맡긴 회색 코트 찾으라고 연락 왔는데 못 찾아서 지난주에 새로 샀다고 했더니 생각보다 나같은 인간들이 만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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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잖아? 나는 여행의 가치가 단순히 좋은 추억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낯선 곳에 가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고, 다른 언어를 듣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세상을 경험하는 거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이상한 일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이 그곳에서는 평범한 일상이기도 하거든.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거지. 물론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반드시 시야가 넓어지는 건 아니겠지. 어디를 가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익숙한 방식으로만 판단한다면 새로운 장소에서도 같은 생각을 반복할 수 있으니까. 반대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아갈 수도 있어. 하지만 직접 경험한 것들이 오래 남는다는 말에는 꽤 공감해. 그때 만났던 사람, 처음 먹어봤던 음식, 길을 잃고 헤맸던 순간까지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기억이 되잖아. 그리고 그 기억들은 나중에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생각지도 못한 영향을 주기도 해. 경험의 복리라는 건 단순히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을 꺼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이후의 나를 조금씩 바꿔놓는 과정인 걸까?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가보고 싶어. 우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우물 밖에 얼마나 많은 하늘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거든.
만약 20대에 100만원 태워서 여행가고 좋은 추억 남겼다고 치자 그럼 그100만원으로 사게된 경험의 효력은 무려 60년 동안이나 유지된다는거임 나중에 30대, 40대, 50대, 심지어 70대가 되어서도 그때 그 시절만 떠올리면 그때 즐거웠던 순간들이 생각나면서 행복해진다는거. 이걸 기억의 배당금 혹은 경험의 복리라고 부르더라고. 돈은 이미 써서 없겠지만 어릴때 겪은 체험만큼은 내 인생서사에 박제된다는 뜻임. 지금 당장 내가 하는 경험이 앞으로 수십년 동안 이자까지 두둑하게 쳐서 되돌아온다는거 솔직히 낭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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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툴러도 되는 방식이라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이 말을 보면서 꾸준함에 대해 생각해 봤어.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잘하고 싶다는 마음부터 가지잖아?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준비하는 시간만 길어지기도 하지. 그런데 아무리 오래 준비해도 처음부터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더라고.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새로운 기술을 배우든 처음에는 실수하고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나는 그 과정에서 꾸준함이 꽤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해. 오늘 서툴렀던 일을 내일 다시 해보고, 어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오늘 조금 더 알아가는 거야.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는 어려웠던 일들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기도 하잖아. 하지만 꾸준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서투름이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 잘못된 방법을 계속 반복하면 오히려 그 방식에 익숙해질 수도 있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른 채 시간만 보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꾸준함만큼이나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왜 실패했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지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서투름을 극복하는 건 단순히 오래 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조금씩 다르게 해보는 과정인 걸까?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처음에는 조금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서툰 상태로 시작해서 하나씩 고쳐가는 편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으니까. 나는 꾸준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믿지는 않아. 다만 꾸준히 시도하고, 실패한 이유를 살펴보고, 다시 방법을 바꾸는 사람에게는 처음의 서투름이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잘 해내고 싶었던 일일수록 시작이 더디고, 대충 해도 되는 일은 금세 끝냅니다. 마음의 무게와 손의 속도는 이상하게도 반비례해요. 간절함이 클수록 실패했을 때 잃을 것도 커서, 마음은 시작하기 전부터 몸을 붙잡아 둡니다. 그러니 머뭇거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서투른 본능에 가깝습니다. 아끼는 것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을 탓할 이유는 없겠지요. 다만 조심이 지나치면 아낀다는 사실만 남고 해 본다는 경험은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일을 끝내 시작하지 못하는 것만큼 아쉬운 일도 드무니까요. 오늘은 소중한 일 앞에서 가장 서툴러도 되는 방식으로, 아주 조금만 건드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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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대방의 아픔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같아. 같은 말을 듣고도 누군가는 웃어넘기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잖아. 그런데 나는 내가 별다른 의미 없이 했던 말이라면 상대방도 그렇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가 상처 주려는 의도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말이 이미 가지고 있던 아픔을 혹은 감정들을 건드리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어. 나는 그 사람이 왜 불편해하는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던 것 같아. 상대방이 얼마나 아팠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나쁜 의도가 없었는지를 알아주길 바랐던 거야. 돌아보면 불편하다는 표현을 들었을 때 조금 더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 그 말이 왜 아팠는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도 내 기준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판단했던 것 같아.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보다 자신의 해석을 더 믿을 때가 있잖아. 나 역시 그랬던 거지. 물론 상대방의 모든 아픔을 미리 알아차릴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알려줬는데도 제대로 듣지 못한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나는 그 차이를 조금 늦게 배웠어.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말했는지만큼이나, 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닿았는지도 살펴보려고 해.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아픔을 모두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아픔이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하는 것인 걸까?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해도 한쪽은 가볍게 넘기고 한쪽은 며칠을 곱씹습니다. 말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 말이 닿은 자리가 달랐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타인의 말에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말이 이미 내가 품고 있던 의심을 건드릴 때 아픕니다. 아프지 않은 말은 대개 나에게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니까요. 그렇다면 상처는 남이 만든 흠이 아니라, 내가 평소 눈감아 온 자리를 비추는 작은 불빛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아픈 말을 곱씹을 때는 그 말을 한 사람보다 아팠던 자리를 먼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아직 돌보지 못한 내가 서 있을 수 있어요. 오늘은 누구를 탓하기 전에, 어디가 아팠는지만 조용히 물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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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다는 건, 어쩌면 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 아닐까? 우리는 정말 관심이 없는 일에는 하기 싫다는 감정조차 크게 느끼지 않잖아. 그냥 하지 않으면 되니까. 그런데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미루고, 그만두고 싶어지는 일들이 있어.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들도 마찬가지야. 그 일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고, 계속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거든. 그런데 당장의 피로와 귀찮음이 그 이유들을 잠시 가려버리는 거지. 나는 하기 싫다는 감정이 반드시 그만두라는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시 확인하는 순간일 수도 있어. 물론 모든 일을 억지로 버텨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정말 나에게 맞지 않는 일도 있고, 잠시 쉬어야 하는 순간도 있으니까. 하지만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하기 싫은 것과, 더 이상 할 이유가 없는 건 분명 다른 이야기잖아. 나는 가끔 하기 싫은 일을 앞에 두고 스스로에게 물어봐. 이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지금 당장 하기 싫을 뿐인 걸까? 그 질문에 답하고 나면 생각보다 쉽게 다시 시작할 때도 있더라고. 어쩌면 우리가 넘어야 할 한계는 능력의 부족보다,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인 걸까?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가 진짜 시작이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거야. 한계에 부딪히면 포기하고 싶고, 힘들기도 하니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해. 허나 하기 싫은 순간에 남들 보다 조금 더 하는 습관이 차이를 만들어 줄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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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은 사람이 절약하는 건 미덕일까, 아니면 불편한 이야기일까? 나는 절약이라는 행동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돈이 많다고 낭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해서 작은 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최근 도경완 씨를 둘러싼 반응을 보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건 절약 자체가 아닌 것 같아. 변기 물을 아끼고, 에어컨을 틀지 않고, 세금을 내기 위해 시계를 팔았다는 이야기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특별히 비난받을 행동은 아니야. 하지만 상당한 자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면 대중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 누군가에게 절약은 선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니까. 한 사람은 에어컨을 틀 수 있지만 아끼기 위해 참는 거고, 다른 사람은 전기요금이 걱정돼 틀고 싶어도 참는 거야. 겉으로 보면 똑같이 더위를 참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은 전혀 다르잖아. 나는 사람들이 이런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특히 방송에서는 개인의 생활 습관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도 하니까. 그런데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그 절약으로 어려운 삶을 이야기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물론 도경완 씨가 실제로 어려운 척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시청자가 느끼는 거리감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 우리는 부자가 검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해. 반면 부자가 자신의 절약을 힘겨운 생활처럼 이야기한다고 느끼면 불편해하기도 하지. 같은 행동인데도 평가가 달라지는 거야. 부자의 절약은 칭찬받을 수 있어도, 부자의 어려움이 반드시 서민의 공감을 얻는 건 아니잖아. 어쩌면 이번 논란에서 중요한 건 돈을 얼마나 아꼈느냐보다, 자신이 가진 것과 다른 사람들이 처한 현실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문제인 걸까?
도경완이 역겨운 이유 잘 나가는 아내 옆에서 궁상맞은 남편 조합으로 방송캐릭터 잡을려고 함 변기물 덜 내리기, 에어컨 안틀기 ㅋㅋ 가난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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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누군가를 아끼는 일에는 익숙하면서, 정작 누군가에게 아낌받는 일에는 서툰 걸까? 나는 이게 단순히 남에게 기대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그 사람이 고마워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기쁘잖아? 그런데 반대로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해. 언제 갚아야 할까, 너무 많은 것을 부탁한 건 아닐까, 혹시 상대방에게 부담을 준 건 아닐까. 때로는 그 다정함을 의심하기도 하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걸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잘해주지만 나중에는 달라지지 않을까? 내가 건네는 다정함에는 진심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상대방이 건네는 다정함에는 자꾸 이유와 대가를 찾는 거야. 물론 모든 호의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겠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호의에 상처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더 조심스러울 수도 있고.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아끼면서 느꼈던 기쁨을, 상대방도 나를 아끼면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 도움을 받는다는 건 반드시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나를 아낄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잖아. 내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믿으면서, 나를 아끼려는 상대방의 마음은 끊임없이 의심한다면 그 관계는 얼마나 외로워질까?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내가 건네는 마음만 믿는 게 아니라, 나에게 돌아오는 마음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아닐까?
남한테 잘 못기대는 사람들 이거 진짜 읽어봣으면 좋겟음 내 다정함에는 진심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상대방의 다정함은 갚아야될 부분만 걱정하고 잇는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잇다 누군가를 아끼는 건 많이 해봣으니까 상대방도 나를 아낄 기회를 줘보자 내친구 중에 유독 힘든걸 말안하는 애가 잇는데 이런 마음이엇겟구나 싶어서 이 말 전해줫더니 진짜 공감 많이하더라고 도와달라는 말 기다리는 지인이 옆에 잇을 수 잇으니까 기대주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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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아낌받으려면 나의 부족함과 약점을 남에게 드러내야한다 그사람에게 약점을 드러내서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으면 좋지만 그 때 잠깐.. 나중에는 이사람이 더더욱 부담된다 그런식으로 내주변에서 꽤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고 걱정하는 카톡을 줬다는 이유로 .. 참 어렵습니다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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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들릴 줄이야. 아주대 소아응급센터 전문의 9명 중 7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나왔어. 아직 실제로 모두 떠난 건 아니지만,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는 응급실에 가면 의사가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잖아? 아이가 아프면 밤이든 새벽이든 누군가는 치료해 줄 거라고 믿고 살아가지. 그런데 그 당연함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환자가 사망했다면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의료과실이 있었는지도 조사해야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진이 더 이상 현장을 지킬 수 없다고 느낄 정도가 된다면, 수사의 방식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앞으로 더 많은 생명을 지켜야 할 사람들까지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의료진이 떠나고 나서야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닫는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어. 특히 그 빈자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픈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라면 더더욱.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오늘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리네.
지금 아주대 난리났네 소아응급의사 9명중 7명이 사직서 제출함 우즈벡 여자와 경찰 환장 콜라보 덕분에 한순간에 응급소아과 공중분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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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지는 우아함이 중요한 걸까, 아니면 스스로 느끼는 편안함이 중요한 걸까? 나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조차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게 만드는 게 조금 불편해. 허리가 굽으면 안 되고, 체형을 가리는 옷을 입으면 안 되고, 머리와 피부를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들. 물론 자신을 가꾸는 건 좋은 일이야.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고, 그 변화로 하루가 더 즐거워진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겠지. 그런데 그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된다면 조금 달라져. 누군가에게는 몸에 딱 맞는 옷이 자신감을 주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넉넉한 옷을 입고 편안하게 걷는 시간이 더 행복할 수도 있잖아.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까지 관리가 부족한 사람의 특징으로 해석하려고 할까? 나는 이게 외모를 평가하는 기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어떻게 가꾸는지는 쉽게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지는 잘 묻지 않거든. 우아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데 어느 한쪽의 삶이 다른 쪽보다 더 잘 나이 드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가꾸는 자유가 있다면, 굳이 가꾸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 나는 나이가 들수록 외모를 얼마나 잘 유지했느냐보다, 자신이 선택한 모습으로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더 궁금해. 남들에게 우아해 보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편안함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우아함이라는 것도 결국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 그 사람의 실제 행복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걸까?
같은 나이인데 누구는 우아하고, 누구는 나이 들어 보이는 이유 나이가 들수록 외모에서 드러나는 건 얼굴보다 평소의 생활 습관과 자기관리인 것 같아요. 1. 허리 라인이 무너지고 자세가 구부정해질 때 2. 편안함만 생각해 체형을 가리는 옷만 입을 때 3. 머리와 피부 관리에 무심해질 때 4. 걸음걸이와 자세가 흐트러질 때 5. 앉는 자세나 사소한 행동에서 단정함이 사라질 때 물론 나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아줌마라는 말 자체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죠. 다만 저는 나이가 들어도 여성으로서의 매력과 분위기는 지키고 싶어요. 비싼 옷이나 명품이 아니라, 단정한 옷차림과 바른 자세, 건강한 몸, 자신을 돌보는 습관만으로도 사람의 분위기는 충분히 달라지니까요. 나이를 거스를 순 없어도, 나를 가꾸는 태도까지 내려놓을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더 편안하면서도 우아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여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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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한자로 풀어보면 '달릴 주(走)', '말 마(馬)', '등불 등(燈)'이야. 말 그대로 말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등불이라는 뜻이지. 옛날 중국에서는 등불 안에 말이나 사람 그림을 붙인 장치를 넣었어. 촛불의 열기로 공기가 상승하면 장치가 회전하면서 그림자가 등불 표면을 빙글빙글 지나갔지. 그 모습이 마치 여러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거야. 그래서 오늘날에는 죽음의 위기처럼 극단적인 순간에 과거의 기억이 빠르게 떠오르는 현상을 두고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표현해. 즉, 원래는 회전하는 등불의 이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된 거지. 어쩌면 '주마등스텔라'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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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문은 어쩌면 좋은 소문일지도 몰라. 처음에는 빵 열 개였는데, 어느 순간 스무 개가 되고, 빵을 나눠 먹는 사람도 늘어났다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에서 과 친구들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부분이 참 좋았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도 아니야. 그저 누군가 가방에 빵을 넣기 시작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보태기 시작한 거지. 우리는 좋은 일을 하려면 특별한 결심이나 큰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잖아? 그런데 가끔은 내가 먹지 않을 빵 하나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도 해. 재미있는 건 아무도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떠들지 않았다는 거야. 그냥 빵이 늘어났어. 열 개가 스무 개가 되고, 다섯 사람이 나눠 먹던 빵을 더 많은 사람이 먹게 된 거지.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야기 속 사람들의 행동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나는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예전에 이야기했던 복리가 떠올라. 좋은 마음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이 또 다른 행동을 하면서 조금씩 커지는 거야. 돈의 복리는 이자가 붙어야 하지만, 마음의 복리는 누군가 하나만 더 보태도 시작될 수 있잖아.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어. 빵이 계속 늘어나면 결국 누군가는 더 큰 가방을 사야 한다는 거야. ㅋㅋㅋ
학식에 빵 나오는 날마다 남은 빵을 가방에 챙겨 가는 동기가 있었는데 집에 가져가는 게 아니었음 빵 나오는 날이면 과 애들이 안 먹은 빵을 걔한테 줌 "고마워" 하고 가방에 하루 열 개 처음엔 집이 어려운가 했음 근데 걔 자취방 괜찮음 월세 60 "빵 뭐 하는 거야" "먹어" 근데 걔 학식에선 빵 안 먹음 자기 건 남기고 남의 걸 가져감 궁금해서 따라갔음 학교 후문 지나서 버스정류장 옆 작은 공원 할머니 한 분이 벤치에 걔가 빵 열 개 꺼내서 드림 할머니가 "오늘 많네" 할머니가 빵을 다시 봉지에 나눠 담으심 두 개씩 다섯 봉지 일어나서 공원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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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사람과 대화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나는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을 수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 역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거든. 그런데 잘 웃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마음이 편안한 건 아니잖아.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도 혼자 있을 때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고, 평소 말수가 적은 사람도 뜻밖의 순간에 큰 용기를 주기도 하지. 나는 무조건 잘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잘되지 않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함께 방법을 찾아주는 사람이 좋아. 누군가에게 필요한 건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보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도 함께 생각해 줄 사람일 수 있으니까. 물론 때로는 해결책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기도 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억지로 웃게 만들거나 좋은 말만 건네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먼저 알아보는 사람. 어쩌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건 특별한 말솜씨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낼 수 있다는 느낌인 걸까?
밝은 사람과 대화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들의 긍정적인 말이 마음에 남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느껴졌던 일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생각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먼저 긍정적인 말을 건네보세요. 긍정의 기운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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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따로 있는 걸까? 24살에 취업하고, 26살에 결혼하고, 30살에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보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만들어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주변에서는 너무 빠르다고 이야기한다는 거잖아. 우리는 참 이상하게도 나이에 맞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누군가 30살에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면 늦었다고 하고,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으면 너무 이르다고 이야기하지. 결혼하지 않으면 언제 할 거냐고 묻고, 결혼하면 왜 그렇게 서둘렀냐고 묻기도 해. 결국 무엇을 선택하든 누군가에게는 너무 빠르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은 인생이 되는 거야. 나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물론 어떤 선택에는 준비가 필요하고, 나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조건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걸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까지 자신의 시간표를 적용할 필요는 없잖아. 누군가는 20대에 가정을 이루고 싶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40대가 되어서야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을 수도 있어.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같은 순서로 살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굳이 다른 인생을 살았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이유가 있을까? 남들이 정해놓은 나이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 아닐까?
임신해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97년생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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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할 때까지 버텨낼 당신에게!!! 회사는 당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을 수 있겠지만,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을 대신할 사람은 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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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우리의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지. 하지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조금씩 흘러가고 있잖아. 그 안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견디고, 배우고, 때로는 잃어버린 것들을 받아들이며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 지금은 그저 아픔으로만 남아 있는 일들도 언젠가는 담담하게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그때쯤이면 알게 될지도 몰라. 우리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시간조차 사실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 언젠가 우리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하나의 서사가 되는 거겠지.
자신의 그늘을 대하는 태도가 의연할 때, 그 아픔은 오히려 깊은 서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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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올 것은 결국 온다고 믿어.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겠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언젠가 내가 간절히 바라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알아보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면 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 바라던 기회가 찾아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어. 그러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허비하기보다, 그날을 위해 오늘의 나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거야. 나에게 올 것은 온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인데 지금 네가 간절히 원하는것들은 사실 미래의 우리가 이미 다 가졌기때문에 지금 원하게 되는거다 어차피 나한테 오게 될건 무조건 오게 되니까 조급해할 필요 없다는거임 난 마음 쫓기고 불안할때마다 이 생각하면 편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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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한 것들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겪으며,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걸어가게 돼.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도 있고, 오랫동안 곁에 머물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멀어진 사람도 있지. 그때는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몇 년이 지나서야 이해되기도 하고, 당시에는 원망스러웠던 일이 훗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해.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지 않아?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는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겪었던 일들이 조금씩 남아 있거든. 누군가의 다정함 때문에 사람을 믿게 되었고, 누군가의 배신 때문에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수도 있어. 어떤 만남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고, 어떤 이별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들었겠지. 물론 모든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다만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남긴 것까지 우연인 건 아니잖아. 어쩌면 인연의 의미는 얼마나 오래 함께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일지도 몰라. 오늘 우리가 마주한 짧은 인연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경험도 언젠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올 수 있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우연인 걸까? 아니면 아직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순간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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