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긴 내 심장 저 여자는 살인자입니다

Joined July 2020
아 맞다 내 인생
13
113
20,341
화장 안해도 이뿌다고 200번 해줘야 됨
1
1
25
452
아니 페임의 스크림 구력이 있잖아 지금 갓직히 잘하잖아
23
644
저도 재밌어요
2
35
757
CUTIE PIE♡
1
28
741
갓직히 여기서 멈추길래 아 삐냐이 뭔 돌옵만 보고잇나;; 햇는데 다시 보니까 중요한 장면이긴 해 응
7
925
나같경 인썸니아 뮤비를 돌옵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
1
16
979
성짜니 형 저 장면 이뻐함이 나와 다를 바가 X
11
90
2,207
이게 쇼타로 눈에는 다른 멤버들이 안보이는 거라고?
1
10
870
아니 원빈 글씨 쓰기 가능할 정도의 장성한 조카 공주님이 있다고 세상에 너 삼촌이야
17
1,136
다로옵은 진짜 삐냐이를 사랑하시는 거 같아🥹🥹
5
1
36
1,173
ㅇㅋ 미장 안하는 거 확인
1
5
635
인썸니아 기타 영상에 카포 있는 거 보니까 근래 연습하던 게 맞나 싶기도 하고
1
761
라이즈가 소설가의 손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서사와 은유로 가득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프로모션을 하는 팀이라 좋음. 책을 읽고 오래 사유하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모든 콘텐츠가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소비되기를 요구받는 시대에 기꺼이 불친절하기를 택하고 한 곡의 노래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준비하고 구태여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그 이야기를 읽어 줄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 태도가 좋고, 이런 시류를 거스르는 낭만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70
2
271
5,443
넌 어쩜 기타도 잘 치니 대체 how
4
37
1,097
여기서 잇자면, 라이즈를 최면에 가둔 것은 영원히 함께함으로써 관계를 지키려는 소원이었지만, 영원히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관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최면에 빠진 최초의 목적이 다시 각성시키는 목적이 되는 이야기 같음. 은석이 만든 서로를 영원히 잃지 않는 세계에, 잃어버릴 관계를 기억하지 않으면 상실의 고통도 피할 수 있다는 앤톤의 생각이 개입하면서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결국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과 서로를 알아보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다르니까. 다시 말해 함께하기 위해 시간을 멈췄지만, 계속 함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역설이고, 이 역설을 포함한 인썸니아의 서사 전체를 비유하는 존재가 뮤비의 고래라고 생각함. 현실의 고래는 물속에서 살지만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함. 반면 뮤비의 고래는 물속에서도 숨을 쉬고, 앤톤은 그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고 말함. 하지만 그 평온은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조건을 제거함으로써 얻어진, 어딘가 불안하고 비현실적인 평온처럼 보임, 시간이 흐르지 않는 최면 세계처럼. 말하자면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조건에서 벗어났듯, 최면 세계의 라이즈도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시간의 흐름과 변화, 상실의 가능성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현실의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은 물속의 삶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님. 오히려 물속에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임. 마찬가지로 라이즈가 최면에서 깨어나는 것 역시 함께하기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하기 위한 일인 것이고, 여기서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수면(水面) 위로 올라오는 행위는 라이즈가 수면(睡眠)에서 깨어나 잃어버린 관계와 현실을 다시 인식하는 각성과 겹쳐 읽힘. 제목이 불면(Insomnia)인데도 가사에서 계속 깨워 달라고(Wake me up)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관계에 대한 기억을 잃었어도 관계가 남긴 정서적 감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원빈은 누구를 찾는지 모른 채 호수를 찾아가고, 쇼타로는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다시 말해 여기서 불면은 단순히 잠들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기억은 잠들었지만 그 관계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음. 그 마음이 향하는 대상을 다시 알아보기 위해서는 한 번 더 깨어나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고래는 라이즈가 갇힌 최면 세계의 본질뿐 아니라 그곳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까지 함께 보여주는 은유가 됨. 만약 정규에서도 이러한 각성의 이미지가 이어진다면, 영원히 머무르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올 필요가 없어졌던 고래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음. 그와 함께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겠음.
감상을 쓴다면 끝까지 다 읽고 쓰고 싶긴 하지만… 최면에 걸린 이유와 최면에서 깨어나야 하는 이유가 사실은 같은 거 아닐까?
1
58
4
200
11,117
애초에 바다에 있어야 할 고래가 호수에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장치처럼 보임. 즉, 고래는 현실의 생존 조건으로부터 이중으로 벗어나 있음. 여기서 호수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점도 물을 최면 세계의 은유로 읽는다면, 호수에 빠져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라이즈의 상태는 현실의 기준으로는 죽음처럼 보이지만 최면 세계에서는 영원한 삶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 수 있음. 고래 역시 현실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호수에 머무르며 살아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상태를 비유하는 존재처럼 보임. 하지만 그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반드시 온전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음. 물속에서도 숨을 쉬는 고래는 평온해 보이지만, 뮤비에서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반복됨. 고래가 상징하는 평온은 고통과 상실이 완전히 사라진 세계라기보다, 그것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 여전히 불안과 상처가 남아 있는 세계의 평온일 수 있는 것임. 무엇보다 그 세계에서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함. 고통과 상실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멈췄지만, 정작 관계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서로에 대한 기억과 인식까지 잃어버린 것임. 결국 호수가 라이즈의 居場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곳에 고통이 남아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고 관계를 이어가는 삶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렇게 보면 고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만이 아니라, 본래의 바다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일일지도 모름. 호수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곧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세계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임. 마찬가지로 라이즈가 되찾아야 하는 것도 최면에 갇히기 전의 시간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현실 속에서 서로를 다시 알아보고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居場所가 아닐까 싶음. 현실에는 여전히 변화와 상실의 가능성이 존재하겠지만, 그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면서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영원히 멈춰 있는 호수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것임.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각성이라면, 바다로 돌아가는 것은 각성 이후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함. 호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할 자리를 다시 찾고 그곳에서 관계를 이어가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임.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정규에서는 영원히 머물 수 있지만 진정으로 함께할 수는 없는 세계에서 출발해, 시간이 흐르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1
2
663
사실 라이자옵들이 살인 방화 상해에 연루될 리가 없어라는 독단과 편견이 다소 작용한 바가 없지 않긴 해.
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