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가 소설가의 손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서사와 은유로 가득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프로모션을 하는 팀이라 좋음.
책을 읽고 오래 사유하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모든 콘텐츠가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소비되기를 요구받는 시대에 기꺼이 불친절하기를 택하고 한 곡의 노래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준비하고 구태여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그 이야기를 읽어 줄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 태도가 좋고, 이런 시류를 거스르는 낭만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애초에 바다에 있어야 할 고래가 호수에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장치처럼 보임. 즉, 고래는 현실의 생존 조건으로부터 이중으로 벗어나 있음.
여기서 호수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점도 물을 최면 세계의 은유로 읽는다면, 호수에 빠져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라이즈의 상태는 현실의 기준으로는 죽음처럼 보이지만 최면 세계에서는 영원한 삶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 수 있음. 고래 역시 현실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호수에 머무르며 살아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상태를 비유하는 존재처럼 보임.
하지만 그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반드시 온전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음. 물속에서도 숨을 쉬는 고래는 평온해 보이지만, 뮤비에서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반복됨. 고래가 상징하는 평온은 고통과 상실이 완전히 사라진 세계라기보다, 그것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 여전히 불안과 상처가 남아 있는 세계의 평온일 수 있는 것임.
무엇보다 그 세계에서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어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함. 고통과 상실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멈췄지만, 정작 관계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서로에 대한 기억과 인식까지 잃어버린 것임. 결국 호수가 라이즈의 居場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곳에 고통이 남아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고 관계를 이어가는 삶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렇게 보면 고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만이 아니라, 본래의 바다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일일지도 모름. 호수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곧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세계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임.
마찬가지로 라이즈가 되찾아야 하는 것도 최면에 갇히기 전의 시간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현실 속에서 서로를 다시 알아보고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居場所가 아닐까 싶음. 현실에는 여전히 변화와 상실의 가능성이 존재하겠지만, 그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면서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영원히 멈춰 있는 호수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것임.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각성이라면, 바다로 돌아가는 것은 각성 이후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함. 호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할 자리를 다시 찾고 그곳에서 관계를 이어가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임.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정규에서는 영원히 머물 수 있지만 진정으로 함께할 수는 없는 세계에서 출발해, 시간이 흐르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인썸니아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고 한다면, 성찬의 사이드 스토리에도 나오지만 상대가 나에게 완벽하게 부합하고 관계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이상적인 관계일까, 오히려 서로의 차이와 시간에 따른 변화, 그로 인한 불확실성까지 관계의 본질적인 조건이 아닐까, 고통과 상실을 없애기 위해 변화와 기억마저 제거한다면, 우리가 지키려던 관계의 의미도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닐까, 고래가 물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듯, 관계 역시 변화와 상실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지속될 수 없다는 것.
정규 1집 오디세이가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여정을 계속하며 성장하겠다 이야기였다면 정규 2집은 변화와 상실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취지의 프롤로그가 아닌가 싶음.
원빈은 기억은 사라졌는데, 잊어버린 사람을 찾아가게 만드는 마음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최면의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동시에 뮤비까지 이어 봤을 때 현재의 영원을 끝내는 변화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는 인물로 읽힘.
물이 최면의 정지와 감금을 상징한다면, 불은 그동안 유지되던 세계를 돌이킬 수 없게 변화시키는 이미지라는 관점에서 원빈의 성냥은 최면 세계의 붕괴 또는 각성의 가능성 관련 소재 같고, 특히 원빈의 얼룩이 집이 불타는 장면에서 가장 짙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 쇼타로 얼굴의 얼룩이 물속에 갇혀 있을 때 짙어진다는 점과 대비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함.
소희도 최면 세계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에 가까운 인물로 보이는데 특히 전술한 것처럼 고래를 최면 세계의 비현실적인 평온과 연결해 읽는다면, 고래가 그려진 시계가 소희 사이드 스토리 마지막에 다시 정상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등장하거나 원빈의 사이드 스토리에서 소희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야 최면을 깰 수 있다고 알려준다는 점에서 소희는 각성의 방법에 가장 구체적으로 접근한 인물로 볼 수 있음. 그리고 그 방법을 전해 받은 원빈이 세계의 소멸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둘의 이야기가 만나는듯.










